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그와 함께 등장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경제학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으면서 '자유'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를 생각하는 방법의 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개념이 되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생각은 모두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자유의 투사 등 모두. 그리고 이것들에 반하는 건 무엇이든 원시적이고 억압적이며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의 자유가 존재하는데, 그 모든 자유가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인 양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2장 오크라 참조). 자유 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 정부의 규제(예를 들어 수입 금지 조치)나 세금(예를 들어 관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 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초)에 '자유'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졌다.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인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 무역 2기에 서조차 자유 무역은 모든 당사자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한다. 국제 무역의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무역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자유'라는 휘황찬란한 단어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 무역처럼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이에게 좋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왜 그토록 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모든 기술적 가능성과 모든 생활 방식 변화를 실현하더라도 지방 정부, 중앙 정부, 국제기구가 지역적, 전국적인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이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시장을 통한 우대나 장려책, 개인적인 선택 등으로는 충분 하지 않다.
기술 개발의 경우 정부가 적극 개입해서 그린 테크놀로지green technology를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기후 변화와 싸우고 대처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말 것이다. 이는 민간 기업 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고, 설상가상으로 이 압박은 금융 규제 완화로 더욱 심해지고 있다.
(...)
가난한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최소한으로 배 출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부작용에 대처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하는 공적 조치도 중요하다. 시장은 1인 1표가 아니라 1원 1표를 원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투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이 말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들 농산물과 공산품 생산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후 변화 적응 기술 등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투자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술의 개발과 개발도상국으로의 이전(부유한 국가의 연구자와 기업이 개발했다면)을 보조금을 주거나 심지어 무료로 지원하기 위한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장본인이 아닌데도 기후 변화의 여파로 훨씬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모든 조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 음식을 먹거나 조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을 '요리'할 때 사용하는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문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객관적 사실과 반론의 여지가 없는 추정에 근거한 과학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경제학적 분석은 신화(잘못된 믿음) 또는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왜곡된 방법으로 취합된 사실 또는 의문의 여지가 있거나 노골적으로 옳지 않은데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질 낮은 '재료'를 사용한 분석이라면 그 결과 나오는 경제학 '요리'는 잘해야 영양가 없는 음식이고, 잘못 하면 몸에 해로운 음식일 수 있다.
(...)
따라서 '사실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이라는 것이 어떤 이론적 근거로 수집되고 제시되었는지를 알아 봐야 한다. 현실을 잘못된 또는 편향된 방식으로 반영한 정보를 경제학적 분석의 근거로 사용하면 적용하는 경제학 이론이 아무리 훌륭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듯 '쓰레기가 들어가면 나오는 건 쓰레기밖에 없다.'